학교 밴드부에서 내가 짧은 시간 안에 갑자기 실력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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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운영했던 블로그에 올렸던 고등학교 밴드부 경험담을 여기에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어색한 문장을 수정하거나, 설명을 대충 했었던 부분들을 보강하다 보니 글의 양이 더 늘어났네요.

그래서 이전의 블로그에서는 3편으로 끝났었던 글이 이번에는 4편으로 늘어나게 됐습니다.


어쨌든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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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tar 신동영 선배


이전 포스트에서 이름(가명)만 소개하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던 기타의 신동영 선배.

비흡연자이면서 후배들을 못살게 굴지도 않는 이 선배는 밴드부 내의 아웃사이더였다.


학교의 밴드부 말고, 외부에서 따로 밴드를 만들어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밴드의 합주 때문에 신동영 선배는 음악실에 없는 때가 많았다.


그래서 약간 신비주의? 베일에 싸여있는 듯한 느낌이 있었는데, 외적으로도 스타일이 특이했다.

머리카락이 긴 것도 아니었지만 그 와중에도 헤어스타일이 예사롭지 않았고, 가끔은 귀걸이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표현으로는 뭔가 간지가 났고, 지금 표현으로는 힙한 느낌의 선배였다.





신동영 선배의 다른 밴드


언젠가는 그 신동영 선배가 밖에서 따로 활동하는 밴드가 어떤 팀인지 한번 보자며, 신동영 선배의 밴드 공연에 음악 선생님을 포함해서 선배들과 동기들까지 다 같이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신동영 선배는 그 밴드에서 포지션이 기타가 아닌 보컬이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정말 반전 매력이었다.




♬ DREAM THEATER - PULL ME UNDER (1992) (작사 Kevin Moore・작곡 DREAM THEATER)




그때 신동영 선배의 밴드가 연주했던 곡이 이곡이었다.

드림 시어터DREAM THEATERPULL ME UNDER

지금 가져온 영상은 5분 이내로 축소된 뮤직비디오 버전이지만, 원곡은 8분이 넘어가는 대곡이다.


DREAM THEATER의 곡 중에서는 그래도 그나마 도전해 볼 만한 곡으로 알려져 있지만, (4분의 4박자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절대 쉬운 곡은 아니다.

DREAM THEATER라는 밴드의 곡들은, 밴드 멤버 중에서 한 명이라도 실력이 평범한 멤버가 있다면 카피를 시도할 수조차 없는 곡들뿐이다.

모든 파트의 멤버가 연주를 상당히 잘하는 편이어야 도전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신동영 선배의 밴드는 모든 멤버들이 고등학생들인데도 불구하고 이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아, 한 명 고등학생이 아닌 멤버가 있었다.

키보드를 연주하는 여자아이가 당시에 중3이었다.




또 다른 곡으로는 윤도현 밴드 버전의 담배가게 아가씨를 연주했다.

이 곡은 곡 자체의 난이도는 높은 건 아니지만, 그 덕분에 멤버들에게 여유가 좀 생겨서인지 무대 위의 퍼포먼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정말 잘했었다.

10대의 중고등학생들만 모인 팀의 실력이 아니었다.

난 이 공연을 보고 신동영 선배의 팬이 되어버렸다.




그다음 날 방과후에 신선배가 음악실로 오는데, 평소와 다르게 머리도 차분하게 하고 평소에는 쓰지도 않던 안경을 쓰고 왔다.

별것도 아닌 그런 변화도 괜히 멋있게 보일 정도로 팬이 됐다.

신동영 선배의 밴드는 정말 최고였다.





밴드부의 분위기가 한층 더 험악해지다


그 이후부터 확실히 느껴졌다.

음악 선생님을 비롯해 대부분의 2학년 선배들이 신동영 선배의 다른 밴드 활동을 못마땅해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갈등이 극에 치닿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 청소년 수련관에서 광주 지역의 청소년 밴드 경연대회가 개최되었다.

음악 선생님의 지휘 하에 우리 학교 밴드부도 그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신동영 선배의 밴드도 그 대회를 참가하게 됐다.


당시의 우리 학교 밴드부가 대회에 나간다면, 기타는 당연히 윤영배 선배와 신동영 선배가 쳐야 했다.

2학년이고, 가장 오래 쳤고, 제일 잘 치니까.

그런데 신동영 선배는 본인이 보컬을 맡고 있는 밴드로 그 대회에 나간다.


한 사람이 두 밴드에서 연주하면서 대회에 나갈 수는 없다.

그런 규칙이 확실하게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불가능하다.

두 탕을 뛰는 멤버가 속해있는 두 밴드가 전부 이도저도 아닌 결과를 낼지도 모른다.

당연히 한 밴드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 당시에 음악 선생님은 굉장히 못마땅해하며 신동영 선배에게 그 밴드를 나가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정말 분위기가 안 좋았다.

다행인 것은 이 일과 관련된 구타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나를 포함한 모든 후배들은 언제 어떻게 폭발할지 모르는 허기호 선배의 눈치를 굉장히 많이 봤을 것이다.





1학년인 내가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많은 갈등과 대화 끝에 결국 조건부로 음악 선생님은 신동영 선배가 그 밴드로 대회에 나가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그 조건은, 본인(신동영 선배) 대신에 나를 훈련시키라는 것이었다.


경연대회 전까지 1학년인 내가 우리 학교 밴드부가 대회 때 연주할 곡을 칠 수 있게 만들어 놓으라는 것이었다.

신동영 선배가 직접 가르쳐서 신선배 실력만큼 그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만들어 놓으라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 못하면, 신동영 선배는 그 팀의 멤버로 경연을 참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말은 그렇게 하셨지만 허락한 거나 마찬가지인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설마 그 실력 있는 밴드에서 활동하는 제자의 꿈을 무너트리려고 하셨을까?

책임 지고 가르쳐서 내 실력을 그렇게 올려놓을 거라고 믿으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 Yada - 이미 슬픈 사랑 (1999) (작사・작곡 이재혁)




우리 학교 밴드부에서 대회 때 연주할 곡은 야다Yada이미 슬픈 사랑이었다.

당연히 기타 솔로는 윤영배 선배가 연주하기 때문에 나는 뒤에서 받쳐주는 백킹만 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당시 나의 실력은 파워코드 잡는 법을 이제 막 알게 된 오른손 팜뮤트도 제대로 못하는 꼬꼬마였기 때문에 신동영 선배의 고뇌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나는 신동영 선배 편이었고, 신선배가 그 밴드로 대회에 나가길 바랐다.

신동영 선배가 아무 문제 없이 그 팀으로 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정말 열심히 한 덕분에 당시의 나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실력이 많이 올라갔었다.

파워코드를 잡고 연주하는 백킹에 있어서는 마스터를 한 느낌이었다.

밴드부에 들어와서 기타를 제대로 치기 시작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말이다.


내 노력 덕분에 신동영 선배는 자유의 몸이 된 채로 본인의 밴드로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결전의 날


무대를 향해 열광하는 관중들
Photo by Hugo L. Casanova on Unsplash




나는 마음속으로 이미 신동영 선배 밴드의 팬이 되어있어서 신선배의 팀이 우승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날 처음 본 여러 팀들 중에서도 잘하는 팀들이 꽤 많았었다.


음악 선생님은 공연 전에 모두를 불러 모아서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공연할 멤버들이 파이팅 할 수 있도록 멋있는 말들을 하신 다음에 다 같이 팀(동아리) 이름을 부르며 파이팅을 외쳤다.

그리고 공연을 했다.

당시의 나는 초보자였기 때문에 완벽하게 연주를 해냈다고 장담을 할 수는 없겠지만, 그 당시 내 기준에서는 큰 실수는 없이 무난하게 연주를 마쳤다.


결과는..? (클릭)

정말로 신동영 선배의 밴드가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우리 학교 밴드부는 아무 상도 타지 못했다.

마지막에 1위 팀이 호명될 때 신동영 선배는 수많은 눈동자들이 노려보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기뻤는지 점프를 하면서 난리 브루스를 치며 좋아하고 있었고, 음악 선생님은 똥을 씹은 얼굴을 하고 계셨다.




신동영 선배는 대회 이후로 정식으로 밴드부를 탈퇴했다.

부러웠다..

그리고 그나마 밴드부 안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대화가 가능했던 선배와 이젠 이별이었다.





겨울방학이 되었다


이제 곧 2학년이 된다.

그 험악한 분위기의 동아리에서 잠깐은 벗어날 수 있는 정말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우연히 다모임(그 당시의 SNS..)이라는 사이트의 어느 게시판에서 밴드 멤버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YMCA 서구문화센터라는 곳에 소속이 되는 밴드로, 전 파트를 다 모집한다는 글이었다.

그런데 그 게시글을 살펴보다가 이 밴드가 신동영 선배와 관련이 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신동영 선배의 연락처가 적혀있었거나, 신선배의 밴드 이름이 적혀있었거나 대충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신동영 선배에게 전화했다.

그 글을 봤다고, 이게 뭐냐고 물어봤다.

자세한 설명을 들은 나는,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가끔 맞기도 하는 일진 선배들의 동아리가 아닌 진짜 음악을 하는 사람들과 밴드를 하고 싶어졌다.

신동영 선배의 밴드처럼 각자 다른 학교에서 악기를 좀 한다는 친구들이 모여서 팀을 만든다는 게 너무 멋있게 느껴졌다.

무서운 선배들과 잠시 떨어져 있는 동안에 군기가 빠진 나는 겁도 없이 그 밴드의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쳤었다.. 어떻게 그랬지?

하지만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심사위원들의 대부분은 정말로 신동영 선배의 밴드 멤버들이었고, 나도 이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오디션이 끝났고.. 붙어버렸다..

그 뒤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하지 않은 채로..

그렇게 개학은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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